VOLUME II · UNIT II · LESSON 01

삼국 통일과 발해의 성립

살수의 거센 물살, 안시성의 화살, 김춘추의 외교, 매소성의 마지막 결전. 그리고 만주에서 다시 솟아오른 발해. 한반도와 만주에 두 별이 떠오른 격동의 100년.

LEARNING GOAL성취기준
9역09-01 삼국 통일의 과정발해의 건국을 살펴보고, 그 의의와 한계를 균형 있게 이해한다.
SECTION · 01

동아시아의 거인들이 부딪치다 — 고구려와 수·당

6세기 후반, 중국이 수에서 당으로 통일되면서 동아시아의 무게중심이 흔들렸다. 고구려는 가장 먼저 그 거인의 칼끝을 마주해야 했다.

⚔️ 7세기 동아시아 — 고구려가 막아낸 두 차례의 폭풍

589 / 598
수의 등장과 1차 침입
300년의 분열을 끝낸 수(隋) 문제가 30만 대군으로 고구려 침공 → 폭풍·전염병에 시달리며 후퇴.
612
살수 대첩 — 을지문덕
수 양제가 113만 대군 동원. 30만이 평양성을 향했으나 을지문덕의 살수(청천강) 매복에 거의 전멸. 살아 돌아간 자가 2,700명뿐이었다고 전한다.
618 / 645
당의 등장과 안시성 전투
수가 무너지고 당(唐) 건국. 645년 당 태종이 직접 출병했으나, 안시성에서 양만춘이 88일 항전. 당 태종이 화살에 맞아 후퇴.
7세기 중반
고구려의 피로
두 차례 폭풍은 막았으나 거듭된 전쟁으로 국력이 쇠진. 연개소문 사후 아들들의 내분 — 큰 위기의 시작.
SOURCE · 을지문덕의 시
『삼국사기』 을지문덕 열전

"신책(神策)이 천문(天文)을 다하였고, 묘산(妙算)이 지리(地理)에 통달했네. 전쟁에 이긴 공이 이미 높으니, 만족함을 알고 그치는 것이 어떠한가."

— 을지문덕이 수 장수 우중문에게 보낸 시 (612년)
SECTION · 02

신라의 삼국 통일 — 외교, 전쟁, 그리고 또 전쟁

한반도 동남쪽 끝의 신라가 어떻게 만주의 고구려를 무너뜨릴 수 있었을까? 답은 두 글자다 — 외교.

태종무열왕릉비
태종무열왕릉비김춘추(태종무열왕) — 한반도 최초의 '태종' 시호.
김유신 동상
김유신 동상가야 왕족 출신, 신라 군부의 최고 사령관 — 삼국 통일 전쟁의 핵심.
나당 전쟁 지도
나당 전쟁 (670~676)당이 한반도 전체를 차지하려 들자, 신라가 7년에 걸쳐 당과 싸웠다.

⚔️ 통일 전쟁의 5단계

648
나당 동맹 — 김춘추의 외교 한 수
신라는 백제의 압박에 시달리고 있었다. 김춘추가 당에 직접 가서 동맹을 맺음. 백제·고구려를 친 뒤 대동강 이남은 신라가, 그 이북은 당이 차지한다는 비밀 약속.
660
백제 멸망 — 황산벌 전투
나당 연합군이 백제 침공. 김유신 vs 계백의 황산벌 전투. 계백의 5천 결사대 vs 김유신의 5만 — 백제 멸망. 의자왕은 당에 끌려감.
668
고구려 멸망
연개소문 사후 아들들의 내분 → 나당 연합군이 평양성 함락. 700년 고구려 무너지다.
670~676
나당 전쟁 — 신라 vs 당
당이 약속을 깨고 한반도 전체를 차지하려 함. 신라는 고구려·백제 유민까지 끌어들여 저항. 매소성 전투(675), 기벌포 전투(676)에서 당군 격파.
676
삼국 통일 완성
대동강 이남에서 당군 완전 축출. 문무왕이 삼국 통일을 완성. "내가 죽거든 동해 바다에 무덤을 만들어, 용이 되어 왜구로부터 나라를 지키겠다" — 대왕암.
문무왕 해중릉
문무왕 해중릉(대왕암)경주 감포 앞바다. 세계 유일의 바다 무덤 — 죽어서도 나라를 지키겠다는 의지.
감은사지
감은사지문무왕의 명복을 빌기 위해 신문왕이 완공. 동·서 두 탑이 1300년을 버티고 있다.
DEEP DIVE · 김춘추의 외교

"여우와 호랑이가 같이 사슴을 잡는다" — 김춘추의 선택

647년, 백제 의자왕이 신라 대야성을 함락하고 김춘추의 사위와 딸을 죽였다. 김춘추는 분노했지만, 신라 혼자 백제를 칠 힘이 없었다. 그는 거대한 당의 힘을 빌리는 길을 택했다.

"왕의 권력이 약하면 외세의 힘을 빌리고, 그 외세를 다시 외교로 다스리는 것 — 이것이 신라 외교의 기본 전략이었다. 결과적으로 신라는 살아남았고, 한반도 통일을 완성했다." — 김춘추 외교에 대한 후대 학자들의 평

그러나 이 선택에는 두 가지 결정적 문제가 있었다. 첫째, 대동강 이북을 당에 양보한 것 — 만주와 한반도 북부가 우리 영역에서 떨어져나갔다. 둘째, 같은 민족인 백제·고구려를 외세와 함께 친 것 — '통일'이 아니라 '정복'이라는 비판이 가능해졌다.

그래서 신라의 통일은 위대한 성취이자 동시에 한계가 있는 통일로 평가된다. 그러나 그 한계는 곧 발해의 등장으로 일정 부분 메워지게 된다.

SECTION · 03

발해의 건국 — 만주에서 다시 솟아오른 깃발

고구려가 멸망한 지 30년. 대조영이 만주 동모산에 발해를 세웠다. 신라 통일의 한계로 잃었던 만주가 다시 우리 손에 돌아왔다.

발해 영토 지도
8세기 남북국남쪽 통일신라와 북쪽 발해 — 한반도와 만주에 두 별이 함께 빛났다.
발해 중경성 유적
발해 중경성 유적지린성 화룡시. 도시 외곽의 흙으로 쌓은 거대한 성벽이 1300년을 견뎌왔다.
발해 연꽃무늬 와당
발해 연꽃무늬 와당고구려 와당과 거의 같은 모습 — 발해가 고구려를 계승했음을 보여주는 증거.

🌟 발해의 시작 — 대조영, 동모산에서 깃발을 들다

668
고구려 멸망 → 유민들의 흩어짐
당은 고구려 유민들을 강제로 영주(요서) 지역에 이주시켰다. 이때 대조영의 아버지 걸걸중상도 이주.
696
거란의 반란 — 기회
영주에서 거란이 당에 반란. 당의 통치가 흔들리자 대조영이 고구려 유민과 말갈인을 이끌고 동쪽으로 탈출.
698
발해 건국 — 동모산에서
당의 추격군을 천문령 전투에서 격파. 대조영이 동모산(지린성 둔화시)에 도읍을 정하고 진(震)국이라 칭함. 후일 발해(渤海)로 국호를 바꿈.
8세기 초~중
"해동성국" 발해
2대 무왕 시기 영토 확장(흑수말갈·당 산둥반도 공격), 3대 문왕 시기 체제 정비. 9세기 선왕(宣王) 때 최대 영토 — 당이 발해를 "해동성국(海東盛國)"이라 칭함.
SILLA · 남쪽

통일신라 (676~935)

  • 건국박혁거세 (B.C. 57)
  • 통일676년 문무왕
  • 영역대동강 이남
  • 도읍경주(서라벌)
  • 특징한반도 첫 통일·당과 활발한 교류·불교 문화
BALHAE · 북쪽

발해 (698~926)

  • 건국대조영 (698)
  • 구성고구려 유민 + 말갈인
  • 영역만주 + 연해주 + 한반도 북부
  • 도읍상경 용천부(5경 중 하나)
  • 특징고구려 계승·"해동성국"·당과 일본에 외교
SECTION · 04

생각해보기 — 신라의 삼국 통일, 어떻게 평가할까?

아래 5가지 질문에 대한 내 생각을 선택하고, 종합 결과를 확인해 보자. 정답은 없지만 균형 잡힌 시각을 길러보자.

📊 통일에 대한 5가지 질문

각 질문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선택. 5문항을 모두 답하면 종합 평가가 나타난다.

Q1. 신라가 당을 끌어들인 외교는 현명했다고 본다.
Q2. 같은 민족(고구려·백제)을 외세와 함께 친 것은 비판받아야 한다고 본다.
Q3. 대동강 이북을 잃은 것은 피할 수 없는 대가였다고 본다.
Q4. 나당 전쟁에서 당을 몰아낸 것은 자주적 통일의 증거다.
Q5. 발해의 등장은 신라 통일의 한계를 보완한 사건이다.
SECTION · 05

한 줄로 정리하면

핵심 정리

  • 고구려는 수·당의 거대한 침입을 막아냈다 — 612년 살수대첩(을지문덕), 645년 안시성 전투(양만춘). 그러나 거듭된 전쟁으로 국력이 쇠진해갔다.
  • 김춘추의 나당 동맹(648)으로 신라가 백제(660)와 고구려(668)를 차례로 무너뜨림. 황산벌에서 김유신 vs 계백.
  • 나당 전쟁(670~676)에서 신라가 당을 몰아내고 문무왕 때 통일 완성. 그러나 대동강 이북은 당에 양보 — 영토적 한계.
  • 698년 대조영이 동모산에서 발해를 건국. 고구려 유민 + 말갈인. 9세기 선왕 때 "해동성국"이라 불릴 만큼 발전.
  • 신라(남) + 발해(북) = 남북국 시대. 발해는 일본·당 외교 문서, 와당·온돌 등으로 분명히 고구려 계승국임을 보여줌.